“統一教会の国際結婚、両国の友好関係に役立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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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국제결혼, 양국 우호관계에 도움”인터뷰 | 통일교 교인 고오리 세쯔코 씨

강수경 기자 | ksk@newscj.com
2013.02.12 22: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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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강수경 기자]“한국에서 통일교인으로 사는 게 행복해요. 통일교인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해도 손가락질하거나 비난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

통일교 교인 고오리 세쯔코(43, 여, 대전시 대덕구) 씨. 그는 마흔셋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동안을 자랑했다. 한국인 이봉주(43, 남, 대전시 대덕구) 씨와 결혼해 지난 2007년부터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 그는 인터뷰 내내 웃는 표정이었다. 그의 동안 비결은 연신 끊이질 않는 웃음이 이유인 듯싶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통일교인으로 웃으며 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웃을 일보다는 슬프고 아파해야 할 일이 더 많았다. 그가 처음 통일교인이라고 일본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사이비’ 종교를 믿는다고 비난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한일 국제결혼으로 반일감정 해소 기대”
통일교인들은 일본에서 ‘사이비’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해야 했다. 심한 경우는 강제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납치나 감금의 위협에도 시달려야 했다.

일례로 지난 2010년에는 강제개종 목자의 사주를 받은 가족 때문에 12년을 넘게 감금당한 고토 토오루 씨의 사례가 공개돼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후 통일교인들은 종교의 자유와 인권을 되찾기 위해 대대적인 시위 활동을 펼쳤다.

그나마 지금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통일교인들이 강제개종에 적극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오리 씨는 한국에서 통일교인으로 사는 것이 만족스럽다. 이제는 통일교인이라고 해도 직접적으로 대놓고 비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통일교의 국제결혼이 양국의 우호관계 증진에도 큰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TV에서 나오는 반일집회를 봤어요. ‘언제쯤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오리 씨처럼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와서 정착한 일본인 친구 A씨의 이야기다. A씨의 아이는 유치원에 다녔다고 한다. 반일감정은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고, 한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일본에 대해 욕을 했다.

이에 화가 난 A씨의 아이는 ‘엄마의 나라를 욕하지 말라’고 말했고, 두 아이는 다툼을 하게 됐다. 이후 싸움의 원인을 알게 된 상대 측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편견으로 자랄 것을 염려하고 생각을 고쳐줬다고 한다.

◆“한국, 아름다운 전통 가족 모습 회복해야”
이 이야기를 들은 고오리 씨는 문선명 총재의 국제결혼이 양국의 우호관계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고오리 씨는 국제결혼으로 국민 저변에서부터 우호관계가 형성되면 그간 해묵었던 반일감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자신의 가정에서부터 그 화목과 평화가 이뤄지길 바랐다.

“남편을 만나서 손을 잡았는데 남편이 자꾸 눈물이 났다고 해요. 저도 남편이 좋았고요. 이후 교제를 하면서 사랑을 키웠어요. 서로가 원해서 결혼도 하게 됐지요. 그렇지만 양가 부모님들은 저희의 결혼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친정아버지는 저희가 찾아뵙자 한마디 말씀도 안 하셨지요. 시부모님도 처음엔 달가워하질 않았어요. 일본사람이었으니까요.”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양가의 가정에 다리를 놓고 평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지금은 일본에 가면 친정아버지가 마중을 나오고, 마산에 있는 시부모님은 밑반찬을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주는 등 여느 가정과 다름없는 화목한 가정이라고 말했다.

고오리 씨는 10년 전만 해도 이같이 해맑은 웃음을 마음껏 내보이며 살게 될 것으로 생각지 못했다. 종교가 없었던 그의 삶은 공허함뿐이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스트레스가 심해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렸어요.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요령을 부리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면 더 출세하고 성실히 일하는 사람은 별 볼일이 없었어요. 왜 세상이 이래야만 하는지 한탄스러웠어요.”

그는 지난 2002년까지 후쿠시마 지방방송국에서 생활정보 프로그램의 PD로 근무했다. 일 속에 치여 살던 그는 마음속에 생기는 허무함을 채우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얻게 됐다. 게다가 탈모 증세가 겹쳐 괴로움이 더해만 갔다.

이때 그는 친구에게 전해 받은 문선명 총재의 ‘원리강론’을 읽고 힘을 얻었다고 전했다. 또 세상이 왜 이렇게 어지러운지 알게 됐다고 간증했다.

고오리 씨는 핵가족화하는 한국사회를 안타까워하며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웃어른을 존경하는 전통이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이러한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론 나설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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