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コラム] 文鮮明統一教に注意「平和愛の自叙伝」、私の名前は異端·疑似「悪口で世界で最も満腹な人」嘆息

セウォル号の惨事の後グウォンパ教主ユーボンオンさんの逃亡で異端と疑似宗教に対する批判が起きている。ユー氏が宗教行為に偽装して寄付を集め、私欲を満たした状況が続々と明らかになっている時点である。統一教会信徒と推定される、ソウル冠岳区に居住する人が統一教会創始者である文鮮明教主の自伝を郵送してきた。なぜなのか。これを読んで、異端と疑似批判の参考にしてほしいという意味で信じる。

 

世の中騒々しい「問題人物」

私の名前は異端·疑似

文鮮明統一教主義「平和愛の自伝」

「悪口で世界で最も満腹な人」嘆息

 

異端·疑似の強力反論

経済風月は、セウォル号の惨事の後、宗教の研究が故タクミョンファン氏の遺稿を介して「グウォンパの正体」を報道してグウォンパから脱出したジョンドンソプ、イ·ヨンエさん夫妻の証言を聞いて「グウォンパ王国の王様」、「宗教天国の異端論争」、「なぜ異端だとするのか」などと報道している。(2014.6〜7月号)
おりしも冠岳区にお住まいの方が送ってきた文鮮明総裁の伝記は、「平和を愛する世界人として」(2009.3ギムヨンサ発行)383ページに達する故人の率直な一生の回顧だ。
この本では、故人が自ら異端と疑似から自分自身を紹介した部分があまりにも胸に届く。
「文鮮明、名前三文字だけ言っても世界がワイワイうるさくなる世界の「問題人物」、「異端と疑似は私の名前の前に付く固有名詞」、「文鮮明はすぐに異端と疑似」等。
故人自ら異端·疑似批判を認識し、世界の問題人物で暮らしながら、世界の平和を続けてきた人生をどう解釈するか。おそらく、統一教会が異端と疑似とは距離が遠いと強調した最も強力な反論ではないかと感じ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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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記事は月刊経済風月第180号(2014年8月号)の記事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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承認 2014.07.28 10:16:14
 

문선명 통일교주의 ‘평화사랑 자서전’, 내 이름은 이단·사이비

http://www.econotalking.kr/news/articleView.html?idxno=124955

 

세월호 참사 이후 구원파 교주 유벙언 씨의 도피로 이단과 사이비 종교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유 씨가 종교행위로 위장하여 헌금을 끌어 모아 사욕을 채운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다. 통일교 신도로 추정되는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분께서 통일교 창시자인 고 문선명 교주의 자서전을 우송해 왔다. 왜 그랬을까. 이를 읽고 이단과 사이비 비판에 참고해 달라는 뜻으로 믿는다.

 

세상 시끄러운 ‘문제인물’
내 이름은 이단·사이비
문선명 통일교주의 ‘평화사랑 자서전’
‘욕으로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사람’ 탄식

 

이단·사이비에 대한 강력반론

경제풍월은 세월호 참사 이후 종교문제연구가 고 탁명환 씨의 유고를 통해 ‘구원파의 정체’를 보도하고 구원파에서 탈출한 정동섭·이영애 씨 부부의 증언을 듣고 ‘구원파 왕국의 지존’, ‘종교천국의 이단 논란’, ‘왜 이단이라 하는가’ 등으로 보도한 바 있다.(2014.6~7월호)
때마침 관악구에 거주하시는 분이 보내온 문선명 총재의 자서전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2009.3 김영사 발행) 383쪽에 달하는 고인의 진솔한 일생의 회고이다.
이 책에서 고인이 스스로 이단과 사이비로부터 자신을 소개한 대목이 너무나 가슴에 닿는다.
“문선명, 이름 석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인물’”, “이단과 사이비는 내 이름 앞에 붙는 고유명사”, “문선명은 곧 이단과 사이비” 등등.
고인 스스로 이단·사이비 비판을 인식하고 세상의 문제인물로 살면서 세계평화를 이야기해온 일생을 어떻게 해석할까. 아마도 통일교가 이단과 사이비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한 가장 강력한 반론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다.

 

‘욕으로 채운 배가 몇 배나 크다’

 

고인은 자서전 제1장에서 ‘밥이 사랑이다’라고 했고 제3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 문선명 총재의 자서전 ‘ 평화를사랑하는 세계인으로’

 

세상에는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다. 고인은 “밥으로 채운 배가 아니라 욕으로 채운 배가 남들보다 몇 배나 크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사람이란 “이단과 사이비라는 욕으로 배를 채웠다”는 말이다.
왜 고인이 이렇게 말 했을까. 고인은 세상이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반대부터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고인은 평생 돈과 명예를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노라고 스스로 확신하고 행동해 왔다는 뜻이다.
고인은 통일교가 ‘교파 없는 교회’, ‘교회 아닌 교회’를 추구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 이단이라는 모진 핍박을 받았지만 억울하지 않고 아플 것도 없고 참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와 사랑으로 이를 수용했다는 뜻이다. 고인은 이 대목에서 “예수님도 이단이란 죄를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또한 통일교는 독창적, 체계적인 새로운 신학으로 ‘우리식구’(신도)들은 대부분 기성교회에서 떠나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꼽았다.

 

세계기독교, 통일, 신령의 정신

 

고인은 부산 피난시절 통일교 창시 때부터 모진 핍박을 견디다 못해 1954년 부산 초막집 교회를 접고 대구를 거쳐 서울로 올라와 장충단공원 인근 북학동 판잣집을 전세 내어 ‘세계 기독교 통일신령협회’라는 간판으로 시작했다고 통일교 인생의 과정을 소개했다.
왜 이 같은 간판을 내세웠는가를 자서전에서 설명했다. ‘세계 기독교’는 동서고금에 걸친 모든 기독교를 포용하고 ‘통일’은 앞으로 나아 갈 목적성을 제시하고 ‘신령’은 하나님 중심의 영육의 조화를 목표한다는 해설이다.
고인은 어떤 교파에 속하고 싶지 않고 새로운 교파를 만들 생각은 더더욱 없기에 ‘세계 기독교…’ 라는 용어로 차별화 했다는 뜻이다. 또한 ‘교파 없는 교회’란 자기의 교단을 희생해서라도 나라를 구하고 나라를 희생해서라도 세계를 구하고 세계를 희생해서라도 인류를 구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고인의 삶이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라는 확신이었음이 여기에 확연히 드러난다고 믿어진다.

 

‘귀하게 벌어 귀하게 쓴다’는 정신

 

고인은 통일교 사업에 관한 대목에서 ‘귀하게 벌어 귀하게 쓴다’고 강조했다. 우리사회에 전승돼온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을 달리 인용했다고 본다.
최근 구원파의 유병언 씨 일가가 신도들의 거액헌금을 빼돌려 호화생활한 대목이 여론의 지탄을 받는다. 반면에 고 문선명 총재는 통일교가 사업을 통해 번 돈을 거룩했고 귀하게 사용했다고 인식한다.

 

   
▲ 1990년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난 문선명 총재.

 

다만 장사 과정에 거짓말을 하지 말고 폭리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이다. 이익은 3할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고인이 장사를 통해 돈을 번 것은 ‘식구들’(신도)의 호주머니 돈으로 선교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인의 이 같은 원칙에도 불구하고 통일교 사업이 귀하게 벌어 귀하게만 썼는지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다른 항목이다. 최근 말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구원파의 유벙언 씨 일가 행태를 지켜본 국민들은 종교활동의 연장이라고 포장된 기업활동에 부조리와 불법이 너무 많이 작용하지 않았느냐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고인은 스스로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의식하면서 종교인들에 대한 3가지를 부탁하고 싶다고 적었다.
첫째, 다른 종교의 전통을 존중하고 종교가 분쟁과 충돌을 막아야 한다. 둘째, 모든 종교 공동체가 서로 협력하며 세계에 봉사해야 한다. 셋째, 세계평화를 위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조직을 발전시켜 나가자.
고인이 이 같은 당부를 하고 싶은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비 종교인의 눈으로 보면 종교간 분쟁과 충돌이란 종교를 빙자한 사욕과 탐욕의 표현이다. 이단과 사이비 논쟁을 넘어 비 종교인이 종교세계의 배타성이나 분열과 갈등을 비판하게 된 오늘의 현실을 기독교인 스스로 하나님께 고해바쳐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고난 겪었으나 마음속 상처는 없다

 

고인이 창시한 통일교가 이단과 사이비 논란 속에서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많은 경제적 성취를 남기고 간 업적은 분명 평가의 대상이다. 더구나 고인의 삶이 결코

 

   
▲ 1976년 6월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예배 참가자들이 문선명 총재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문 총재는 그해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뽑은 ‘ 올해의 인물’ 로 선정됐다.

 

평화롭지 않고 온갖 고난과 상처를 극복해 왔다는 사실도 평가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자서전 속에도 고인은 일제 식민시대에 태어나 북한 공산정권을 체험하고 눈 내리는 흥남감옥에 갇혔다가 유엔군의 도움으로 풀려나와 이승만 대통령 정권과 미국에서 6차례의 옥고를 치렀다고 적었다. 이 과정 속에 고인은 미국에 건너가 청교도 정신을 일깨워 세계분쟁을 막고자 노력하고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 북한의 김일성 및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이 피 흘려 싸우는 팔레스타인도 기꺼이 방문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같은 기록은 객관적인 사실로 우리네가 거의 알고 있는 고인의 삶이다. 그렇지만 고인은 가난과 시련에 따른 어떤 마음속의 상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참사랑 앞에는 오직 세계평화가 남아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고인이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를 감명 깊게 읽을 수 있었다는 소감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0호(2014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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